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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추홀학산문화원 ‘지역문화예술의 공동체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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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마당’에서 하는 열린 연극이 마당극이다

admin 0 5198 2014-01-27 01:28:18

 

마당극을 정의하라! 닥치는 대로 물어보았다. 마당극이란 무엇인가?

 

처음 전통에서 굿을 재발견한 것은 조동일(구비문화, 민중문화론)이라 한다. 굿에 이야기와 시를 덧입힌 것은 김지하(굿, 판)라 한다. 마당에서 탈춤을 처음 놀았던 것은 한두레 채희완(창작탈춤)이라 한다.

탈춤에서 마당의 미학을 발견하고 탈과 연극을 융합하여 마당극 이름을 처음 붙인 것은 류이(허생전)라 한다. 창작극을 마당극으로 발전시킨 연출가는 임진택(마당극 연출, 창작 판소리)이고, 가장 먼저 만들어진 마당극 전문집단은 극단 현장(박인배 등)이라 한다. 마당에 소리를 도입하여 창작판소리, 노래극(김민기 등), 판굿(민요연구회, 터울림 등)이 만들어졌고, 마당과 미술이 만나서 민중미술(오윤, 김봉준 등)이 만들어졌다. 마당극을 빌려와 상품화해서 장사한 곳은 MBC(마당놀이)이고, 마당극 출신으로 가장 유명해진 배우는 김명곤(문화부장관)이다. 마당극패가 가장 많이 모인 곳은 한국민족극운동협회다.

 

일종의 야사(野史)다. 사실은 누가 먼저, 누가 주역이라 말하기 힘들 정도로 공동 즉 따로 또 함께 창조해 온 것이 마당예술이었다. 서로가 협동하고 또 분화하며 마당예술의 역사를 만들어 왔다. 그런 분들에게 물어본 마당극은 이렇다.

 

모두가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것은 마당극은 ‘마당’에서 하는 연극이라는 점이다.

마당이란 장소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마당이란 장소는 전통 농촌 사회에서는 말 그대로 ‘마당’이었다. 마당에서 이야기하고 노래하고 춤추며 악기를 연주했다. 전문 예인들(뜬패)이 판을 열기도 하고(마당예술), 민중들(두레패)이 마당에서 일하고 놀았다(마당문화).

마당이 사라진 도시 속에서 마당은 ‘열린 공간’의 의미로 재해석되었다. 대학의 광장, 공장의 작업장, 도심의 거리, 전문공연장의 야외무대 등으로 확장되었다. 사이버 공간에서도 마당(게시판 카페, 카톡 등)이 생겨났다. 마당예술, 마당문화의 형식 특성은 열린 공간이다.

 

그리고 모두에게 마당은 단지 장소, 공간만은 아니었다. 마당예술, 마당문화의 내용 특성으로도 마당을 해석했다. 마당은 공간과 시간이 일체화된 ‘시공간’ 즉 장(場, field)이다. 마당의 시공간성을 드러내기 위해 ‘판(상황)’ ‘현장(일터)’ ‘집단(모인 사람들)’ ‘지금여기(당대성)’ 등 시공간에 담겨지는 내용을 주목했다. 이 내용 특성을 ‘마당정신’으로 표현했다.

 

이러한 내용(마당정신)과 형식(마당)이 만나 마당예술, 마당문화로 살아났다.

‘마당’에서 창조되고 향유되는 많은 놀이들은 전문가의 관점 즉 기능과 매체가 강조될 때는 ‘마당예술’이란 말로, 생활인의 관점 즉 놀이와 재생산이 강조되면 ‘마당문화’란 말로 풀어나갔다. 예술과 문화는 마당 속에서 긴밀하게 연결된 선순환의 물결을 이룰 수 있었다.

 

마당극은 이러한 마당에서 이루어지는 ‘연극’이다. 마당극은 마당예술과 마당문화의 중심이 되는 매체이다.

 

연극은 서양에서 발달한 이야기(story)가 담긴 연행(연희행위 演行) 예술이다. 그 연극을 하던 사람들이 전통적인 마당문화 즉 탈춤 민요 판소리 풍물 등과 만나 융합(fusion)해낸 결과물이 ‘마당극’이었다. 전통에서 ‘마당’을 빌려오고, 서양에서 ‘연극’을 빌려왔다.

연극에 마당이 도입되면서, 연극의 많은 요소가 바뀌게 되었다.

 

연극의 공간이던 액자무대에서는 배우와 관객이 철저히 구별된다. 관객은 배우들을 한 방향으로만 바라본다. 무대의 사실성을 높이기 위하여 조명 의상 무대장치 등이 정교하게 배치된다. 이를 철저하게 하던 연극이 서양의 근대 연극이었다.

마당이 도입되면서 이 모든 것이 바뀌었다.

 

배우와 관객의 구별도 모호해졌다. 배우와 관객은 마당의 한가운데 중심에 있는 사람들과 마당의 사방 둘러싼 사람들의 관계로 변했다. 절대적인 차이가 상대적인 차이로 변한 것이다. 마치 인터넷 게시판의 게시글과 댓글의 관계처럼. 보는 것도 만드는 것도 일방향이 아니라 쌍방향, 더 나아가 주고받는 대화로까지 변해갔다. 열린 공간 마당에는 약간의 조명과 상징적인 무대장치와 간편한 의상과 소품만을 이용해야만 했고, 그것만으로도 관객들은 사실로 받아들이는 상상력을 발휘했다.

마당의 열린 공간적 특성에 도움 받아 닫힌 연극에서 ‘열린 연극’으로 변할 수 있었다. 서양 현대극의 다양한 실험들처럼.

 

마당의 시공간성, 즉 마당정신이 발전하면서 ‘열린 연극’을 넘어 ‘열린 문화’로 거듭났다.

우선 매체가 바뀌었다. 연극을 중심으로 다양한 문화매체가 결합되고 파생되었다. 문학, 연극, 춤, 미술, 음악 등 예술매체들 사이의 융합을 넘어 구어(口語), 놀이, 노동 등 생활 매체들도 연극 속으로 녹아들었다. 창작 도구, 제재의 제한이 사라졌다.

또한 내용이 바뀌었다. 일상의 삶, 일하는 사람들의 생활, 정치경제 사회적 갈등 등 담기는 주제들의 제한도 사라졌다. 세상의 거의 모든 이야기가 담길 수 있었다,

 

나아가 문화의 생산방식이 바뀌었다. 때로는 개인이 주도하기도 하지만, 집단창작 공동창작의 다양한 기법들이 발전했다. 즉흥 대사(ad lib)나 관중과의 대화가 수시로 끼어들고 판마다 조금씩 다르게 공연돼도 좋았다. 재주가 많은 개인이 이름을 얻기도 했지만, 집단 자체가 인기를 끌었다. 이 과정에서 마당패, 문화패 등이 창조와 보급의 주체로 등장했다.

 

마당이라는 열린 공간, 마당정신이라는 열린 이념, 마당극이라는 열린 연극, 마당문화라는 열린 문화가 바람(風流)처럼 모이는 길목이 바로 ‘마당극’이었다고 그들은 말했다. 이러한 공통성과 더불어 각자의 전문성과 경험에 따라 차별성을 지적하기도 한다. 마당이 열린 공간이듯, 마당극에 대한 정의도 어느 정도는 열려 있다고 보아야 한다.

공동취재단 하영권/김보경/정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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