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기억하는 승기천[2] - 민후남
수봉산 물자락에 따라흐르던 기억들
민후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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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6-18 17:41:04
저는 민후남이고요 올해 황금돼지띠 61세 인데 여기서 태어나서 남구에서 미추홀구까지 살고있어요
승기천은... 제가 기억하는게 승기천인지는 몰랐어요 지금 얘기들으면서 알았는데 독쟁이에서 인하대로 흐르는 길이 동양장 사거리로 가는게 승기천이고 저는 사는 곳이 숭의교회 용현초 있는 곳에서 살았거든요 그래서 거기가 용현천 학익천하고 기억이 더 많아요
그 때 돌아보면 물이 기억 나요. 물이 흐르던 곳이 있어서 저는 어릴 때 되게 사색적이었는데 수봉공원에 혼자 올라가면 돌담풍이라는게 있었어요. 물이 흐르는 곳에서만 나오는 단풍이거든요. 돌 이끼죠. 쉽게 말하면 수봉산에는 그게 많았는데 여자애들은 가가지고 막 돌이끼에 침을 뱉어가지고 손톱에다 하면 물들어요. 그걸 하다가 내려온 기억이 많거든요. 수봉산이 물자락이 꽤 많았어요. 사방으로 이쪽은 도화동쪽 이쪽은 숭의동쪽 독쟁이쪽 올라가는 고싱 여러군데 있었거든요.
그래서 막 각자 물길에 따라 물길 떄문이었을까요 와룡공장도 있었고 와룡소주, 제물포 방향으로 있었고 물길이 많아서 미나리 밭이 되게 많았어요 거기 중국사람들이 하는 미나리밭이 되게 많았고요 그런것들이 수봉산 공원쪽 뒤에 되게 많았죠.
원래 독쟁이 그쪽이 우물이 되게 많은 동네에요 쌍물도 있었고요. 지금도 우물이 있어요. 물이 그 바로 수봉공원에서 내려오는 자락들이죠. 다 이쪽으로 넘어가는 쪽 수봉공원 반대편 쪽 우물도 많았고요 콩나물 공장이라는 개념은 없었고 콩나물 움들을 많이 지었죠. 움은 공장은 아니고 산자락 틈에 검정 갑빠라고 하나요 그런걸 씌우고 콩나물을 키우던 그런곳이 꽤 많았어요.
저희 집 앞이 바로 복개되기 전에 살다가 복개가 됐어요 중학교때쯤 그렇게 폭이 넓지는 않았어요. 저희가 집 앞에 있던거는 대략 한 1미터 그정도 였는데 물은 그렇게 많지 않았어요.
엣날에 흐르때는 각자의 하수가 그리로 흘렀죠 흘러서 모여서 물줄기를 따라서 갔는데 그 때는 뭐 화장실도 정화조가 아니였기 때문에 오수는 나오지 않았고요 하수도 뭐 나온적이 아니어서 거기에서 제 어렸을 때 기억으로는 자전거 타다가 빠졌던 기억이 있는데 자전거가 빠질정도의 폭이면 아주 좁은건 아니거든요 근데 슬픈 기억을 얘기하자면 저희 아버지가 술을 드시고 오시다가 거기에 빠지셔가지고 동지날이었는데 아버지가 동지죽을 되게 좋아하시는데 동지죽을 끓여놨는데 안들어오시는거에요 동지죽은 다 돌리잖아요 동네를 다 돌렸는데 안들어오셔서 찾으러 갔더니 거기 빠지셔 가지고 그러니까 혼자 못 일어날 정도의 물이었던 거죠 술 드셨으니까 옷이 다 젖어서 감기, 폐렴이 걸려서 고생하셨던 기억이 있어요. 그니까 물이 그렇게 많지는 않은데 자전거가 빠져도 자전거가 빠진것도 아니고 걸려서 못들어오고 우리가 요새 말하는 갯벌들어가는 그정도? 그정도밖에 없었어요. 그 당시에는 비만 오면 인천 시내가 다 여기까지는 찼죠. 저는 기억이 이쪽에 기억이 많은데 제가 초등학교를 용현초 나왔는데 그 앞이 천이 용현천이 흐르는 곳이고 다 논이었어요. 거기가 그리고 내려가는 웅덩같은게 있어서 받아가지고 내려가고 낙섬쪽 지금 왜 철길 수인철길 쪽에 왜 벽돌 인천문화재단 같은데 거기 창고 하나 있어요. 거기에 바로 낙섬이 있어서 낚시터 미끼랑 그런거 팔던 바로가 낙섬이었거든요 낚시도 하고 수영도 하고 그쪽은 물이 많은 쪽이에요 바다죠 바다를 매립한거죠.
제가 얼마전에 그 제주 동부시장을 갔는데 동부시장에는 그렇게 고거를 시장 안쪽에 그렇게 천같이 흐르는 시장이 있어요. 그래서 오 되게 특이하다 했더니 원래 거기가 물이 흐르던 곳이었다고 시장에 딱 그 남동구 쪽에 가면 실개천 해놨잖아요. 그렇게 해놨어요. 그래서 되게 신기하다 그랬거든요. 우리도 뭐 개천이 아니고 그 때는 거기죠 개천이라고 할 수 없잖아요. 도랑? 도랑 보다 뭐 물이 흐르는 곳이 도시에 있으면 좋죠.
그 뒤에 공사를 하고 그랬던 것 같은데. 기억나요. 처음에는 흐르는 도랑이죠. 비올땐 많이차고 안올떄는 물이 좀 흐르는 이정도 폭에 도랑이었는데 그 때가 새마을 운동하고 그런 때 쯤 이었겠죠. 그 때쯤 번듯하게 뚜껑이 있는게 아니고 네모나게 하수도를 만들었어요. 그때는 폭을 더 넓혀가지고 그러고 난 뒤에 씌운거에요 몇 년 있다가요.
그러고 점점 더 그 때는 사람이 별로 안살았으니까 제가 살던 숭의동 거기만 농사를 짓거나 하는 사람이 살지 않고 그냥 살았고 여기는 다 농사짓던 사람들이었는데 그 이후에 뭐 피난민들 그런 사람들 다 이주시켰어요. 그리고 혼자시는 분들 모자가정 그런거 해가지고 일률적으로 새마을 운동하면서 집을 쭉지어서 이주시키고 그랬거든요. 그래서 길을 새마을 운동 때 복개를 했을까요 정확하지는 않고 어렸을 때니까 새마을운동 떄문인지는 모르고 처음에는 개천이었다가 네모나게 반듯하게 딱 공구리를 했다가 그 이후에 아스팔트를 깔았어요. 그 때 사람들이 좋다고 박수치고 막 그랬죠.
이제 어차피 하수도는 흐르고 있는데 뚜껑을 덮어준거잖아요. 그러고 아스팔트 생기고 차가 슝슝 지나가고 자전거 빠질일도 없고 길이 넓어지니까 대통령도 오고 가위자르고 했어요.
미추홀이 물이라는 뜻인데, 미추가 온 사방에 물이 옛날에는 사방이 물이잖아요.
승기천에는 논밭이었고 사람들이 없었어요. 저희 사는 동네하고 떨어져있어서 우리가 언제 갔었냐 비 많이오면 미꾸라지잡으러 갔던 기억이 있었고요. 거의 다 농사짓는 분들이어서 밟고 그러면 안된다 그래서 맨날 둑으로 미끄러지고 그랬는데 둑방길같은 개념이죠. 물이 생긴다그러면 이쪽으로 아예 생겨도 분위기적으로는 되게 좋을거 같아요.
@민후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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