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마당마다 다른 마당극, ‘느낌 아니까 !’
탈춤과 연극의 융합으로 탄생한 마당극.
다양한 현장에서 이루어진 다양한 마당극이 있었다. 일반적인 마당극의 특징으로는 여러 가지를 손꼽을 수 있다. 열린 무대, 배우와 관객의 넘나들기, 집단적 신명, 연산(連山 omnibus) 구성, 가벼운 무대장치, 즉흥성, 극중 극, 독일 서사극작가 브레히트의 소격효과 V-effect, 시대 상황의 반영, 놀이정신 등.
그리고 구별되는 양식으로도 창작탈춤, 창작극, 마당극, 촌극, 판굿, 판놀이, 역할극, 거리굿 등이 이론화되어 있다. 하지만 현실은 그것보다 더 다양하다.
마당극 경험이 많은 전문가들에게 각자가 생각하는 마당극의 전형을 물어보았다. 그들의 각종 공연 이야기들은 우리 시대의 마당극을 위한 디딤돌이 될 것이다.
창작탈춤의 시각에서 마당극을 바라보는 창작탈패 한두레 출신의 채희완 교수는 ‘소리굿 아구’와 ‘갑오농민전쟁 100주년 역사맞이굿’을 손꼽았다.
김지하 극본의 ‘소리굿 아구’는 봉산탈춤의 노장과장(먹중마당)의 구조를 빌려왔다. 먹중 소무 취발이의 삼각관계에 대입하여, ‘기생관광’을 둘러싼 일본인사장足發夷 여공·여대생 한국청년·아구 3명의 창작탈을 만들고 대립을 설정했다. 여름과 겨울의 상징 대립도 배경으로 담았다. 현장에 따라 아구의 승리, 패배, 무승부로 결론 냈다. 1974년 한두레 공연.
1994년 1박2일(총19시간)의 역사현장 재현극 ‘역사맞이 굿’에도 의미를 두었다. 전날의 길놀이와 고사굿으로 놀 땅(무대)에 먼저 신명을 불러들인다. 당일에는 갑오전쟁의 줄거리를 몇 개의 이야기 마당으로 나누어 재현한다. 200명이 넘는 전국의 문화패들을 역할만 주고, 즉흥 출연시켰다. 칼노래와 칼춤을 창작 삽입하고, 깃발춤도 만들었다. 북접의 전투성과는 다른 남접의 후방성(문화패의 일상적 역할)에 연출의도를 담았고, 일상 하나하나에 문화적 해석을 덧붙였다.
한두레 출신의 연극연출가 남기성이 2013년 마당극 ‘허생전’을 연출하면서 방점을 둔 부분은 시대와 사건을 공유하던 과거의 마당극판과 달리 ‘현재의 관객은 훈련되어 있지 않다’는 생각. 하여 270도 연극전용 무대에서 펼쳐진 잘 짜여진 마당극 허생전에서는 즉흥성을 배제했다. 극의 흐름에 최대한 충실할 수 있게 배우의 연기에 집중했고, 부분적으로 포졸 장면에서만 연기가 뛰어난 배우들에게 역할만 주고 즉흥 대사를 치게 했다. 원작에 충실하면서, 오늘의 관객들에게는 생각의 거리를 제공하는 방식에 초점을 두어 연출했다.
마당극이란 이름을 처음 붙였던 마당극 연출가 류이인열은 가장 감동적이었던 마당극으로 어느 ‘즉흥극’ 경험을 언급했다.
노동자문화패에서 마당극을 준비했었다. 경찰의 제지로 공연이 불발 상황이었다. 마당극을 준비했던 2명이 술 먹은 상태로 마당판에 모인 사람들에게 “왜 일 안하고 있어 !” 한마디 던지자, 난리판이 벌어졌다. 역할만 주고 즉흥놀이판이 만들어진 것이다. 류이는 이런 관점에서 쉬운 연극과 촌극을 보급하고, 마당극은 ‘판놀이’ ‘역할놀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전문 마당패 극단 ‘현장’을 만들었고 현재 세종문화회관 대표인 박인배 사장이 말하는 대표적인 마당극 연출작품은 노래판굿 ‘꽃다지’. 89년부터 94년까지 매년 가을 꽃다지 판이 열렸다. 5천명이 참가하는 대형 야외집회다. 노동현장의 작은 공연활동들, 소모임 협동 작품들이 큰 하나의 작품으로 모여들고 다시 대중으로 돌아가는 예술창작과 보급이 유기적으로 이루어지는 문화생태계의 전형이라는 관점에서 소중히 생각했다. 촌극만들기 공동체놀이 등의 경험이 대형집회로 확대적용되었고, 민주화의 전진 속에서 마당문화의 물결이 합법화된 시기에 창출된 마당판이었다.
마당극 연출도 하고, 민중미술운동의 다양한 장르들을 개발해온 미술가 김봉준은 ‘동일방직 문제를 해결하라’는 마당극을 인생의 전환점으로 손꼽는다. 1978년 사건 규명극 형식의 각본(박우섭 대본)을 들고, 동일방직 해고 노동자들과 함께 마당극을 만들었다. 대의원선거를 방해한 똥물사건의 현장을 재현하기 위해 똥물대신 진흙을 퍼다가 사방으로 던지고 처바르며 난장판을 만들자, 여공 배우들은 그 자리에 앉아서 통곡을 하기 시작했다. 배우들은 연극 제목 현수막을 뜯어 들고서 가두 행진으로 돌진했고 모두가 연행되었다. 3가지 마당정신 - ‘성속일여의 소도, 소통과 나눔의 열린 공간, 살림의 터’ 성격이 잘 드러나는 마당굿이었다고 김봉준은 설명한다.
마당극 연출가 정희섭은 ‘그림굿’도 이야기했다. 미술집단 ‘두렁’(김봉준 대표) 창립전시회의 퍼포먼스는 ‘탈놀기’였다. 그림 중의 사람 얼굴로 만든 탈을 쓰고, 전시장을 돌아다니는 것이 바로 탈놀기. 탈이란 캐릭터만 주고 현장 즉흥 상황극으로 노는 일종의 ‘만화연극’도 마당극의 일종이라 말한다.
민요와 촌극 등 쉬운 마당문화 보급을 하다 생활문화공동체 ‘반쪽이공방’이란 사업으로 서양에서 발전한 DIY생활문화와 마당문화를 결합하려 했던 자칭 생활문화 뜬두레패인 하영권은 ‘신발축제’라는 마당극 경험을 좀 다른 관점에서 소개했다.
신발생산 중소기업 사원 전체가 조를 짜서 ‘조별 신발 만들기’를 한 달에 걸쳐서 하고, 신발축제 당일 자기가 일하여 만든 신발을 발표하는 시간을 가졌다고 한다. 집단창작한 신발을 효과적으로 소개하는 3분은 자연스레 촌극으로 나타났고, 촌극경연대회 같은 축제 당일은 기업의 새로운 문화마당이 되었다고 한다. 한 번도 마당극이나 촌극을 배운 적이 없는 일하는 사람들도 기존의 TV광고나 단순한 아이디어만으로도 약간의 협업과정만 있으면 마당극적 놀이구조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자리라 했다.
스스로 만드는 생활문화, 일과 놀이의 통일, 소통과 통합의 놀이정신이 살아있던 신발축제는 기존에 알려진 마당극과는 좀 다른 사례다. 신발축제를 통해 자신의 노동에 대한 가치를 자각하는 과정에 목표를 두어, 마당극이 단지 저항의 수단만이 아니라 소통과 통합의 유력한 생활문화임을 보여주고 있다.
여러 사람들의 사례를 통하여 볼 수 있는 마당극의 모습은 단순히 한 가지가 아님을 알 수 있다. 마당극의 창작방법도 마당극의 공연내용도 상황과 연출자의 의도에 따라 다른 모습으로 나타났다.
마당극의 놀이정신을 정확히 이해만 한다면 상황에 걸맞는 양식으로 판이 구성될 수 있다고 볼 수 있다. 좀 더 전문적인 예술로서의 마당극부터 대본도 무시하는 즉흥극까지 다양한 모습 모두가 마당극의 영역이다.
이 시대에 다시 마당극이 발전한다면, 아마도 발전한 인터넷 및 모바일 세상과 영상문화가 반드시 중요하게 끼어들 것이 틀림없다. 마당정신으로 주어진 상황에 걸맞게만 논다면 모두 마당극이 아닐까.
공동취재단 하영권/김보경/정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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