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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공감력 살린 마당극, 교육연극과 촌극

admin 0 6808 2014-01-27 01:31:22

 

‘다시 마당극’을 말하는 사람들이 초점을 맞추는 것은 ‘전문 마당패’가 아니다. 혹 전문 마당패를 말한다 하더라도, 이는 생활인들의 마당극 운동을 촉진하는 역할을 하는 데 초점이 있다. ‘다시 마당극’ 운동이 중시하는 것은 생활인들의 생활문화로서의 마당극이다. 마치 전통시대 농민들이 ‘두레’로 협동노동하면서 같이 즐기던 민요나 농악(풍물)이나 막춤처럼,

 

전통시대의 용어를 빌려오면, 전문예인 집단인 ‘뜬패’보다 생활문화집단인 ‘두레패’와 그 사이를 매개하는 ‘뜬두레패’ (또랑광대 등, 예인로서의 전문성도 어느 정도 갖추고 있지만 생활문화 집단과 더불어 생활하며 생활문화의 보급을 잘 하는 사람들)를 중시한다고 볼 수 있다.

 

대학시절, 촌극경연대회를 준비했던 연극반원 000은 연극반 친구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제 우리는 연극을 하지말자. 사람들이 연극을 할 수 있도록 도와만 주자.”

그런 생각들을 가진 사람들이 협동 노력한 결과, 각 생활소모임(대학의 경우, 과)별로 만들어진 연극들이 한 자리(촌극경연대회)에 모였다. 연극반원 등 연극을 해본 사람들은 생활소모임에서 연극을 집단 창작할 수 있도록 도와주거나, 경연대회장에서 사회를 맡거나 악기를 치고 추임새를 넣는 등 과거와는 다른 역할을 맡았다.

이런 발상의 전환의 결과로 만들어진 촌극경연대회장의 분위기는 좀 다른 점이 있었다.

 

연극반이 마당극을 공연할 때는, 공연을 구경하러 온 관객들은 재미있게 관람하다가 대목대목 추임새를 넣거나 웃음보나 울음보가 터진다. 그러나 촌극경연대회장의 분위기는 달랐다. 잘 알고 지내던 친구들이 엉뚱한 복장(남장 또는 여장)을 하고 나타나 평소와는 다른 모습으로 행동할 때 웃음보를 참을 수 없었기에 처음부터 끝까지 쉬지 않고 웃고, 울거나 분노할 수 있었다. 동시에 익히 알고 있는 이야기나 노래나 사건 등을 연기하고 있으니, 쉽게 적극적으로 개입했다. 극 중 분위기를 즐기면서도 극에 몰입되기 보다는 극에 공감행동을 취했던 것이다.

 

촌극은 나름의 미학이 있다. 풍자와 해학이 전문 마당극의 미학이라면, 촌극의 미학은 소통 즉 공감력이다. 같이 울고 웃고 분노하고 공감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이웃과의 교감’이 가장 중요한 촌극의 작품기준이 된다.

 

교감의 미학으로 이루어진 마당양식으로는 촌극. 민요(특히 후렴이 있는 민요). 대동놀이(줄다리기 등) 등이 있었다. 같이 줄을 만들고, 자기들이 만든 줄을 서로 겨루는 한 달 이상에 걸친 줄다리기는 줄 당기는 당일도 중요하지만, 줄을 만드는 과정에서 더 많은 교감하는 미적 가치를 가질 수 있는 양식이었다. 전문 놀이패들의 작품들과 생활인들의 놀이가 만나 몇 만 명이 함께 즐기는 ‘대동축제’를 이루었다.

 

마당극이 대동축제와 만나는 과정은 80년대 초반의 일일 뿐만 아니라 그 과정을 경험한 사람들 대부분이 자신의 현장에서 재생산해나감으로써 지금도 도처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놀이과정이다.

쉽게 예를 들면 방송사에서 장수 신기록을 세우고 있는 프로그램으로 ‘전국노래자랑’이 있다. 노래라는 매체 하나로 전국의 구석구석을 누비고 있다. 그 프로그램의 구성 원리와 촌극경연대회의 구성 원리는 거의 동일하다.

 

이것이 촌극이다. 더 나아가 마당극의 중요한 양식이다. 더 나아가 생활문화로서의 ‘놀이’며 축제다. 그 미학은 ‘공감’ 즉 소통이다. 공감 속에 비판과 건설이 녹아 있다.

 

소통의 문화를 체험했던 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생활현장으로 돌아가서 벌이는 문화 활동들이 바로 생활문화운동이었다. 각 대학에서, 공장에서, 마을에서, 거리에서. 저절로 일어난 놀이판처럼 보이는 거의 모든 문화현장에는 숨어있는 놀이패들이 있다. 누군가 중심이 되어 소모임을 만들고, 판을 주도하고, 뒷바라지를 했기에 일어나는 문화현상이다.

그들이 멘토로 삼고 있는 예술양식이 바로 ‘마당극’이라 볼 수 있다.

 

마당극이 아닌 경로로 이러한 생활문화 현상과 결합한 다양한 사람들의 문화 원형도 알고 보면 마당극과 거의 유사한 미학을 가진 양식들에 기초를 두고 있다. 단지 매체 체험이 약간 다를 뿐, 원리는 동일하다.

 

이런 생활문화운동을 직업적으로 하고 집단으로 연극놀이터 ‘해마루’가 있다. ‘교육연극’을 특화시켰다. 초기 해마루를 만든 사람들은 마당극 세대였다. 이후 서양에서 체계적으로 발전한 교육연극을 학습하고, 교육연극과 마당정신의 결합을 실천하고 있다. 자신들을 필요로 하는 곳은 어디나 출동하여, 맞춤형으로 놀이문화를 보급하고 있다. 전통문화와 마당체험을 강조하면서. 그들은 촌극이란 말 대신 유사한 뜻으로 ‘즉흥극’을 사용한다.

 

연극학과 출신들의 일자리가 되어 있는 제도로 ‘예술 강사’가 있다. 예술 강사 일을 놓고 교육연극을 시작한 사람들과 ‘해마루’의 차이는 경륜의 차이와 더불어 마당정신에 차이가 있다고 한다. 하는 일은 유사할지 모르지만, 미학적 깊이가 다른 셈이다. 풍물 교육을 중심으로 해온 ‘터울림’의 경우도 거의 동일하다.

 

교육연극이 가진 힘은 ‘역할놀이’라는 연극의 본질에 있다. 자신과 다른 사람의 역할을 놀아봄으로써 이루어지는 ‘서로 깨우침’에 그 가치가 있다.

“ 연극은 원래 역할놀이였고, 역할놀이에 중점을 둔 양식이 촌극이며, 이 시대가 필요로 하는 마당극은 촌극과 같은 시민연극 생활연극이다 ” 류이인열(미디어교육연구소 이사장)은 강조한다.

“중요한 것은 자기정체성이고, 자기정체성은 자기부정에서 더 정확하게 볼 수 있다. 자기부정을 해보는 것, 그게 촌극이다. 역할 바꾸기, 다른 사람의 역할을 해봄으로써 자기 자신을 더 잘 알게 된다.” 양회구(주안영상미디어센터 소장)도 말한다.

 

다시 마당극을 이야기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연극의 역할놀이’ 기능과 ‘소통 공감의 힘’에 주목하고 있다. 마당극이 가진 이 힘을 다시 일으키고, 마을만들기와 같은 시대적 과제를 해결하는 데 보탬이 되고 싶은 것이다.

 

300여 년 전의 문화예술 양식들을 되살림으로써 ‘마당문화’가 물결을 이룰 수 있었다. 이제 다시 30여 년 전의 문화예술 양식을 되살림으로써 ‘새로운 마당문화’의 물결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이런 꿈을 꾸는 사람들이 소수일까. 어딘가에서 봇물이 터진 다면, 바람처럼 몰려들지 않을까. 해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 진화할 뿐이다.

공동취재단 하영권/김보경/정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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