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주민들의 자발성과 신명이 빚어 낸 마을 축제의 전범(典範)
-학산마당극놀래2017 심사평 (문계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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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0-30 19:37:02
주민들의 자발성과 신명이 빚어 낸 마을 축제의 전범(典範)
―2017학산마당극‘놀래’ 심사평
문계봉(시인, 인천민예총 상임이사)
1. 들어가며
모두가 주인공이었다. 관객과 배우의 구분도 없었다. 가을밤의 마당극 현장은 주민들의 신명이 거침없이 분출되던 ‘신명의 해방구’였고 마을의 축제였다. 전문배우들 뺨치는 완벽한 무대 매너와 연기를 보여준 팀들도 있었고, 국어책 읽듯이 대사를 하여 관객들의 웃음을 유발한 팀들도 있었다. 그러나 애초에 우승이나 등수보다는 마을 주민들의 잔치와 대동의 현장으로서의 의미가 승한 ‘마당’이었기에 참여한 배우들에게나 공연을 마치고 객석에 앉은 관객들에게나 결과보다는 함께 만들어 가는 과정이 훨씬 더 의미가 컸을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러한 과정을 통해 주민들은 뿌듯한 성취감와 애향심을 아울러 확보하게 되었을 것이고, 그것은 또한 지역문화자치의 가장 성공적이면서도 모범적인 사례로 남게 될 것이다.
2. 참여 작품들에 대한 약평
숭의2동 ‘코스모스 핀 장사래’ 팀의 연극 ‘우리 동네 좋을시고’는 전반부 구음자의 가창능력이 특히 눈에 띄었는데, 노랫말에 동네의 일상을 녹여낸 것과 ‘만병통치병원’이라는 극적 설정은 주민들과 몸이 불편한 노인들의 많은 공감을 얻어낼 수 있는 소재였다고 생각한다. 참석자들 전부가 특정질환을 앓은 환자역할로 출연을 하고 그 환자들에게 재밌고 현실성 있는 처방을 제시함으로써 관객들의 공감과 재미를 아울러 도출해 낸 연극이었다는 생각이다.
주안2동 ‘이쁜 여우들’ 팀의 연극 ‘횡단보도’는 비교적 연령층이 젊어서 그런지 속도감 있게 진행된 연극이었다. 또한 마을의 현안, 이를테면 좁은 도로, 아이들의 놀이공간 부족, 재개발 문제 등을 작품 속에 잘 녹여냈다는 판단이다. 육교가 헐리고 횡단보도가 생기면서 노인들은 보행이 수월해졌지만 일부 상인들은 매상이 줄어 고민이기도 하다. 이해관계가 어긋나는 몇몇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이처럼 하나의 현상을 바라보는 다양한 견해를 가감 없이 보여줌으로써 연극은 주민들로 하여금 타인에 대한 공감과 이해의 시간을 가져볼 것을 요구하기도 한다. 민의가 가장 원초적으로 파악되는 택시를 소재로 활용했다는 것에서 이 팀의 센스를 확인할 수 있었다.
용현1, 4동 ‘한결’ 팀의 풍물극 ‘우리 동네가 달라졌어요’는 출연자 전원의 연기가 수준급이었던 작품이었다. 또한 마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건과 이야기를 다뤄 관객의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즉, 모든 주민들이 스스로 나서서 칙칙했던 동네를 꽃동네로 변신시키는 장면은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아마도 그 꽃들의 향기는 용현1,4동은 물론 남구 전체로 퍼져나가 모든 사람들의 가슴에 풋풋함을 불러일으킬 것이라고 확신한다. 다만 음향 문제 때문인지 여러 대사가 물려 나오고 무대 밖의 이야기가 계속 스피커를 통해서 들렸던 점은 옥에 티라고 할 수 있다.
주안3동 ‘올드맘’ 팀의 연극 ‘생각이 달라도 우리는 하나’는 그야말로 노익장이 빛난 공연이 아닐 수 없었다. 출연자들의 연령층이 상당히 높았음을 고려할 때 그분들의 연기는 박수 받아 마땅하다는 생각이다. 노랫말을 개사해 마을의 민원을 제시하려고 한 형식적 진부함에도 불구하고 ‘올드’한 ‘맘’들의 연기는 빛을 발했다는 말이다. 포르투갈인 가정도 슬쩍 삽입함으로써 다문화 상황도 언급하려 했던 것 같은데, 시도는 좋았으나 너무 지엽적이어서 큰 울림은 없었던 것 같아 아쉽다.
주안6동 ‘늴리리아’ 팀의 음악극 ‘산다는 건’은 50대 여인들의 삶의 애환을 다룬 작품이다. 고부간의 갈등, 자녀와의 갈등, 남편의 사업문제, 부모님과의 문제, 가정 경제를 위해 취업을 고민해야 하는 문제 등 50대 주부들의 현실이 핍진하게 묘사되어 비슷한 연령층의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객석에서 몇몇은 고개를 숙이고 눈물을 닦아내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메인테마 곡의 가사 진행에 따라 이루어진 극의 전개는 다소 단조로워 보였지만 적절한 소품을 활용함으로써 메시지 전달에는 확실한 효과를 보였다는 판단이다.
숭의1,3동 ‘기찻길 옆 난타’ 팀의 ‘나의 인천이야기’는 냄비와 캔과 같은 생활악기를 활용한 난타 공연이었는데, 이 팀에 등장하는 출연자들은 모두 기찻길 주변에서 한 평생을 살아오신 어른들이다. 기찻길은 아마도 그녀들의 삶의 여정에 대한 비유일 수도 있을 것이다. 돌아가면서 자신들의 삶의 이력을 펼쳐내는 형식적 단순성은 아마도 배우들의 높은 연령을 배려한 연출가의 의도였을 게 틀림없다. 그러나 단순한 형식임에도 불구하고 출연자들의 삶이 갖는 생생한 역동성은 그 단순성을 상쇄함은 물론 관객들에게 진한 감동으로 다가올 수 있었다. 그녀들의 삶이 곧 인천의 역사였을 테니 그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 아니겠는가.
도화1동 ‘등불’ 팀의 연극 ‘쓰리고(놀고 떠들고 신나고)’는 7~80대 어르신들의 ‘제2의 청춘선언’의 장이었다. 백스크린과 영상을 활용함으로써 형식적 단조로움을 극복하고 극적 효과를 높일 수 있었는데, 스크린에 출연자들의 과거 사진이 비춰질 때마다 관객들 역시 자신들의 화양연화를 떠올리며 과거 속으로 추억여행을 떠났을 것이 분명하다. 모든 연령층에게 그러한 추체험이 가능한 것은 아니었겠지만, 적어도 고령층들에게는 그 어느 작품보다 많은 공감을 불러일으켰을 것이다.
학익2동 ‘풀꽃’ 팀의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은 엄마와 아이가 함께 만든 이미지 연극이었다. 4계절의 이미지를 만들어내기 위한 의도였겠지만 무대 및 소품, 의상 등에 특히 많은 신경을 썼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비교적 젊은 주부들과 그의 친자녀들이 함께 만든 극이어서 그런지 무대도 상당히 넓게 활용하였다. 실제 모자 관계인 연기자들의 연기 합도 잘 맞았던 것 같다. 아이들의 연기가 생각보다 훌륭했다. 다만 계절의 변화가 지나치게 기계적이고 형식적으로 처리되는 것 같아 아쉬웠지만 그러한 아쉬운 점을 해당 계절에 어울리는 배경음악을 적극 활용함으로써 극복해 내고 있었다. 이 연극에서는 음악이 또 하나의 주인공이란 생각이 들었다.
도화2,3동의 ‘어수선’ 팀의 연극 ‘도화결의’는 3~40대 주부들이 의기투합해서 만든 작품인데, 큰 열정을 바탕으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젊은 주부들의 작품이라서 그런지 전체적인 분위기가 무척이나 활기찬 작품이었다. 특히 축제(행사)를 준비해 나가는 과정을 극으로 만듦으로써 공연의 내용이 곧 실제이고 실제가 곧바로 공연으로 연결되었다는 점에서 극의 생명력이 남달랐던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준비과정에서의 불거진 선후배 사이의 갈등과 화해, 화합하는 과정을 진솔하게 녹여냄으로써 그들이 아니면 도저히 만들어 낼 수 없는 ‘그들만의 작품’을 탄생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많은 인물들이 나왔지만 저마다 자기 역할들을 확실히 해 내고 있는, 가장 연극적인 논리에 충실한 훌륭한 작품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였을까. 공동창작 과정에 대한 평가에서도 유일하게 10점 만점을 받은 팀이었다. 전문 주부극단을 창단해도 좋을 듯싶다. 도화동에서 맺은 그녀들의 결의가 더욱 굳고 아름다운 열매로 맺어지기를 기대해 본다.
주안1동의 ‘일동희망’ 팀의 노래극 ‘전국노래자랑 주안1동 편’은 주안1동에서 인기텔레비전 프로그램인 ‘전국노래자랑’이 개최된다는 상황을 가정하여 만든 노래극이다. ‘전국노래자랑’이라는 익숙하게 알려진 프로그램의 포맷을 가장 효과적으로 활용한 작품이란 생각이 들었는데, 사회를 맡은 연기자는 물론 출연자들 모두가 노래와 연기의 조화를 이루어 내 관객들의 높은 호응을 이끌어 냈다. 그리고 극중 대사를 활용하여 지역 민원을 언급하는 것은 익숙하면서도 매우 영리한 시도라는 생각이다. 흥을 이끌어 내는 데는 노래만한 것이 어디 있겠는가? 그런 면에서 ‘일동희망’ 팀의 노래극은 이미 관객들의 적극적인 반응을 상당부분 선점할 수 있었을 거라는 게 나의 판단이다.
숭의4동의 ‘고집불통 락울림’ 팀의 난타극 ‘내 인생의 황금기’는 말 그대로 모든 사람들에게 자신의 황금기에 대한 생각을 환기하게 하여 그것을 현재의 고단한 삶을 극복하게 하는 동력으로 삼아보자는 의도를 담고 있는 작품이다. 도입부에 부른 노래의 가사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은 것은 아쉬움이었다. 백스크린에 자막으로 보여줬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그리고 연기자들이 릴레이식으로 자기의 전사(前史)를 이야기하는 형식은 이미 익숙한데, 그러한 단조로움을 난타공연으로 상쇄하려고 했던 것 같다. 꿈 많았던 과거로 돌아가는 것은 일종의 판타지다. 판타지는 현실의 고통을 잊게 해주기도 하지만 자칫 그것에 침윤될 경우 현실에 대한 응전을 약화시킬 수도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용현5동 ‘낙섬 마을연극 토지락’ 팀의 연극 ‘맹이야 꽁이야’는 마을의 역사를 배우들의 대사로 풀어낸 연극이었다. 앞서도 지적한 바 있지만 대사로 직접적인 민원을 풀어내는 방식은 진부하고도 익숙한 형식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그러한 진부함을 상쇄할 수 있는 개성 있고 특별한 연극적 장치가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물론 관객을 불러 극에 참여 시키는 시도는 참신한 것은 아니지만 마당극의 성격을 십분 살린 시도였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볼 수 있다. 또한 앞부분에서 이루어진 인물들의 만담 역시 마당극으로서의 성격을 잘 드러낸 부분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러한 긍정적인 성격이 뒤에 가서 맹꽁이를 등장시켜 우화적 성격으로 달바꿈 되면서 오히려 극적 긴장감을 떨어뜨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주제의식을 지나치게 직설적으로 드러낸 것 역시 아쉬움으로 남는 부분이라 하겠다.
학익1동 ‘학나래 두드림’ 팀의 난타극 ‘크게 쉼쉬기2’는 모든 면에서 매우 뛰어난 작품이었다. 작품의 서두를 영화 ‘스타워즈’의 도입부를 차용해 화면으로 보여준 시도라든가 환상적인 음악과 음향, led조명을 활용한 분장, 세련된 무대 장치 등 전문 공연 팀의 작품이라고 말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작품의 수준이 높았다. 비유 또는 상징적 의미의 소재들을 활용해 표현했음에도 불구하고 말하고자 하는 주제가 어색함이 없이 전달되었고, 연극적 요소도 매우 승(勝)한 작품이었다. 예를 들어 세 마리의 나비는 오염되지 않은 자연을 상징하는 것이었을 텐데 그들의 군무를 조명의 조도를 조절하여 다양하게 보여줌으로써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시각적 효과와 연동시켜 표현하는, 매우 세련된 연극적 장치를 보여주기도 했다. 단순한 타악 공연이 다양한 퍼포먼스가 가미된 훌륭한 연극으로 승화되는 지점이 아닐 수 없었다.
3. 나가며
확실히 올해에 공연된 작품들의 수준은 작년보다 진일보되었다는 게 심사위원들의 중론이었다. 또한 20여 개의 마을(동) 주민들이 일사불란하게 작품을 함께 고민하고 자발적으로 역할을 분담하며 이견이 발생했을 때는 치열한 토론과 상호 소통 과정을 통해 그것을 극복해 오는 과정은 가장 원초적인 민주주의의 훈련의 장이자 생활문화와 주민자치예술의 내적 동력이 만들어지는 과정이었을 것이다. 또한 그것은 곧바로 남구라는 생활공동체의 문화적 역량을 밑에서부터 증폭시키는 과정이기도 한 것이다. 그런 면에서 남구는 이제 자부심을 듬뿍 가져도 될 만한 훌륭한 축제를 안착시켰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남구의 문화적 내공과 동력은 자연스럽게 인천 시민 모두의 문화적 자양을 제고하는데 시너지를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
그리고 반드시 기억되어야 할 또 한 가지는 바로 축제의 전 과정을 계획하고 집행하고 무탈하게 마무리하기 위해 수많은 시간을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제대로 쉬지도 못한 채 견마(犬馬)의 수고로움을 아끼지 않은 학산문화원 실무자들의 헌신적인 노력과 희생이다. 그들이 있었기에 주민들의 참여는 더욱 세련되게 빛날 수 있었고, 허다한 일정들이 톱니바퀴처럼 일사불란하게 돌아갈 수 있었을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그들의 노고에 경의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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