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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마을 + 나 + 생활연극, 다시 마당극이다

admin 0 5905 2014-01-27 01:30:03

30여년 전 시작된 마당극 운동은 사회 문화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치고, 구석구석 녹아들어 있다. 연극 자체만 보더라도, 마당극은 연극 일반에 흡수되기도 하고, 일반 연극도 상당히 마당화되어 있다. 특별히 마당극만을 강조해서 볼 필요가 없다고 말할 정도로.

 

이런 상황에서 마당극이니 마당극운동이니 하는 것들이 과거의 무용담 정도로 치부되기도 한다. 마당극은 흘러간 과거일 뿐인가. 지금도 마당극을 중심에 놓고 활동하고 있는 각 지역의 놀이패들은 과거의 틀에만 사로잡혀 있다는 말인가. 다시 물었다.

지금 다시 마당극운동이 필요한가? 마당극이 필요한 이유는 3가지 정도로 요약된다.

 

우선 시대가 변했다고 지적했다.

마당극은 산업화 민주화 시대의 산물, 분명 그 시대를 담은 양식이었다. 정보화 세계화된 현실 속에서 민주화 투쟁의 일환으로서의 마당극의 역할은 축소되었다. 집단보다 개인, 사회보다 인간의 내면, 정치보다 경제의 가치가 더 중요해진 현 시대상도 담아낼 수 있는 양식이 ‘역시 마당극’이라 말한다.

 

박우섭(인천 남구청장)은 말한다.

“ (마당은) 현장이다라는 생각을 강하게 갖고 있어요. 어떤 문제가 있는 곳, 문제가 해결해 져야 할 필요를 강렬하게 느끼는 곳, 그래서 사람들이 모여들 수밖에 없는 곳, 그것이 마당이다. ”

박우섭은 새로운 마당 즉 이웃과 협동하고 공유하는 인간관계를 만들어 가는 ‘마을만들기’에 마당극의 공동체적 신명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새로운 시대는 새로운 사회적 과제를 안고 있다. 도시 공동체로서의 ‘마을’이 새로운 과제의 하나다. 산업화 시대와는 다른 새로운 공동체, 민주화의 결과로 넓어진 공간 즉 ‘지역자치’의 핵심이 ‘마을’이기에.

 

사회문제 뿐만 아니라 인간의 근본 문제를 담아야 한다는 이야기도 있다. 김봉준(화가)은 기존의 마당극운동이 소홀했던 영역, 즉 인간의 삶을 둘러싼 근원적인 문제들을 마당 속에 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문화적 자기정체성, 생명의 질서, 마음의 평화, 문화의 다양성, 살림의 정서, 나눔과 영성의 회복’ 등을 담아야 진정한 공동체가 만들어진다고 보고 있다. 유럽의 사회운동이 길을 잃은 이후 그들이 찾아낸 ‘뉴에이지’ 문화처럼.

 

과거 민주화의 중심에 ‘맞서싸움’(대결)이 있을 때는 ‘풍자와 해학이라는 비판정신’이 소중했다. 이제는 대결과 더불어 ‘건설과 통합 즉 생태계’가 강조된다. 건강한 생태계 만들기에는 ‘소통이라는 창조정신’이 더 소중해진다. ‘마당’은 비판과 창조 모두를 수용할 수 있는 그릇임은 분명하다.

 

사람들의 생활이 바뀐 것도 주목한다.

모든 것의 중심에 ‘개인의 자아실현’이 있고, 현실 공간이 아닌 ‘가상 공간’이 무한하게 넓어진 일상 생활이다. 개인의 생활과 마당극이 어떻게 만날 수 있는가. 마당은 집단적 공간개념이 아닌가. 가상공간이 현실의 마당을 대체하는 것 아닌가. 사이버 게임보다 마당극이 더 재미있는 일인가 물어보았다.

 

류이인열(미디어교육연구소 이사장)은 말한다.

“ 누구나 지식인인 시대입니다. 그리고 누구나 예술인인 시대고. 이제까지는 사람들이 남이 표현한 것을 구경하는 입장이었다면, 현대에 들어와서는 자기가 직접 표현하고 또 다른 사람이 표현한 것을 보고 즐기고 하는 것이 예술 향유의 기본적인 스타일이 되어 있기 때문에. 현대예술은 기본적으로 시민예술이고 커뮤니티 예술이고 내가 참여하는 예술이고 나도 예술가다 이렇게 얘기할 수 있습니다. ”

스스로 만들고 스스로 즐기는 문화 시대가 왔으며, 바로 마당극이 그런 문화였다고 주장한다.

미래학자들은 생산과 소비가 분리된 시장경제와는 달리, 생산소비자(prosumer) 경제 즉 제3의 물결(엘빈 토플러) 시대가 올 것을 예견했다. ‘DIY (Do-it-yourself)' 생활문화, 즉 스스로 만들고 스스로 즐기는 문화산업이 이미 뿌리내렸다. 특히 가상 공간 속에서는 더더욱. 모든 것은 네트워크이며, 그 네트워크의 중심에 자기 자신이 있는 것처럼 살고 있다.

류이인열은 마당극이야말로 스스로 만들고 스스로 즐기는 연극양식이었다며, 새로운 문화 물결에 어울린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박인배(세종문화회관 사장)는 “마당극하자는 곳보다 ‘나도 배우다’라고 말하는 연극학교에 더 많이 모일 것”이라며, 마당극운동이 개인의 문화적 자기실현 욕구를 미처 담아내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지적한다.

 

마당이 바로 network이며, network의 중심에는 바로 자기 자신이 있으며, 가상공간의 게임보다 마당극이 재미있는 놀이라고 젊은이들을 느끼게 만들 때, 다시 마당극은 살아날 수 있다. 마당극에는 이런 생활의 변화를 담아낼 수 있는 가능성이 분명 있다. 하지만, 아직은 내용과 형식면에서 재정비가 필요한 부분이다.

 

수도권에 직업적인 마당패가 없다. 마당극 운동의 구심이 없는 상태에서 다시 마당극의 열기가 살아날 수 있을까 물어 보았다.

 

정희섭(한국문화정책연구소장)은 말한다.

“ 마당극이 지향했던 가난한 연극으로서, 그 다음에 또 쉽게 참여할 수 있는 연극으로서, 그 다음에 많은 생활인들이 자기발언을 담아내려고 했던 연극으로서, 그런 연극운동. 이런 것들은 오늘날 오히려 아마추어 연극 생활연극 또는 시민연극이라고 하는 이름으로 행해지고 있는 그런 어떤 아마추어 생활연극에서 충분히 계승할 수 있는 그런 요소가 굉장히 많다.“

정희섭처럼 전문 마당극운동보다 아마츄어 마당극운동에 ‘다시 마당극’의 가능성을 두고 있는 전문가들이 많다. 여기저기에서 움트고 있는 시민연극, 마을연극, 교육연극, 생활연극 활동에 마당극 전문가들이 촉매제로 작용한다면, 다시 마당극의 바람결(風流)이 불어올 수도 있다.

 

분명 마을은 더 큰 마당이다. 네트워크는 개인화된 마당이다. 생활촌극이 우선 필요한 마당극 형식이다. 이렇게 다시 마당극을 이야기 해보지만, 결국은 구체화(具體化)된 모범사례가 이어져야 할 마당이다.                                                                                                                                                                                               

공동취재단 하영권/김보경/정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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