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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추홀학산문화원 ‘지역문화예술의 공동체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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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Hi, 또 하나의 한류 ‘madang'

admin 0 6219 2014-01-27 01:31:01

 

한 시대를 풍미한 마당문화의 물결은 한국적 현상일까. 아니면 세계 문화 역사에서도 서로 참고가 될 만한 일들이 있지 않을까. 세계적 경험에 기초한다면, ‘다시 마당극’이 더 단단한 근거로 시작되지 않을까. 궁금해서 이것저것 뒤져보고, 물어 보았다.

 

우선 주목할 것은 90년대 후반 과천 지역에서 열렸던 ‘과천 마당극축제’다. 세종문화회관 박인배 사장이 당시 예술 감독을 맡았다. 한국 고유의 마당극과 해외의 다양한 양식의 거리극, 야외극, 실험극들이 한 자리에서 만났었다. 세계 속의 마당정신을 찾는 과정이었다.

당시의 만남이 거의 유일한 교류 체험이었다.

하지만, 한국의 마당문화는 여러 맥락의 문화현상과 내용과 형식의 교류를 거쳐 왔다. 사람들이 세계 속으로 나가보고, 또 세계의 사람들이 한국을 찾아옴으로써 자연스런 교감과정을 거쳤다.

 

최근 주목할 만한 것은 미국의 리빙씨어터 극단들이다.

<월 스트리트를 점령하라 Occupy Wall Street!>의 시위는 뉴욕 제너럴 앙상블(Newyork general Assembly)이 공연하는 현장무대였다. 마치 80년대 마당극 현장을 보는 느낌이다. 월가 시위를 알리는 포스터에는 ‘입장권 대신 텐트를 가져오라’고 적혀 있다. 1970년대 실험극단이었던 리빙씨어터(The living theater)와 오픈씨어터(The open Theater)의 전통을 이어받고 있고, 음유가객 밥딜런의 노래도 다시 부활했다고 한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 미국에서도 마당극의 바람이 불었던 것이다.

 

알게 모르게 숱한 마당문화의 물결이 세계사에 있었다.

주목하는 것은 3가지다.

 

우선 1920년대 후반 독일권에서 히틀러 등장 전에 있었던 노동자문예운동이다. 80년대 미학교수 반성완이 약간 소개한 바 있다. 우리들의 마당극, 마당문화와 유사한 문화 흐름이었다. massen spiele (대중연극), sprech chor(말하는 합창대)와 같은 양식이 유행이었다. 우리식으로 말하면 마당극과 노래굿이다. 반성완은 벤야민의 수용미학 이론과 브레히트의 서사극 이론도 소개한 바 있다. Brecht라는 세계 연극사의 획을 그은 극작가도 사실은 1920년대 1930년대 독일노동자문예운동을 전문가의 관점에서 재해석한 사람으로 평가된다.

한국의 마당극 이론에서 Brecht의 서사극론은 큰 영향을 미쳤다. ‘낯설게 보기’라는 V-effect 소격효과는 탈춤과 마당극의 미학을 해석하는 도구였다.

누군가 이런 부분들을 포괄적으로 마당문화와 연결하여 정리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주목할 만한 것은 제3세계 문화운동이다. 인종차별적인 니그로란 말을 버리고 ‘네그리뛰드’란 말로 새로 시작했던 아프리카의 문화운동(프란츠 파농 등)은 아프리카 전통문화의 복원으로부터 아프리카다운 현대문화를 만들어보는 물결이었다. 그 결과 세계적인 예술가들이 아프리카에서 등장했다. 또 하나 주목하는 것은 반군부독재투쟁과정에서 자라난 남미의 민중문화들이다. 제3세계문학 총서 등으로 문학부분은 상당히 정리되어 있지만, 연행문화 부분은 아직 정리가 미흡한 부분이다. 이런 제3세계문화운동도 한국의 마당문화에 큰 영향을 미쳤다.

 

독일의 문예운동과 제3세계문화운동이 칠판십년대 한국의 마당문화운동에 큰 영향을 미쳤다면,

지금 ‘다시 마당극’ 운동에 영향을 크게 미칠 것들은 유럽 등의 현대 연극 속의 마당극적인 흐름들이다. 거리극축제로 유명한 유럽의 오래된 전통축제들은 너무도 많이 보고 있고, 소개되고 있다. 그들 하나하나도 뜯어보면 초기에는 지역운동, 공동체운동과 깊은 연관을 갖고 있었고, 역사가 오래되면서 유명한 마을축제가 되어 세계인들을 불러 모으고 있을 뿐이다. 거리극, 야외극, 실험극 등등으로 불리거나 마을축제로 보이는 대부분의 문화현장이 도움되는 정보이다.

 

이들 문화현장, 연극 등을 볼 때 주의할 점은 ‘언어 장벽’이다. 언어장벽 탓에 ‘몸짓’이나 ‘선율’만이 공감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이다. 더 깊이 있는 분석은 대부분 불가능하다. 몸짓만으로 선율만으로 공감을 얻어낸다는 점이다. 우리의 마당예술들이 한류란 이름으로 세계로 나아갈 때도 그렇고, 세계의 열린 예술들이 한국으로 유입될 때고 그렇다. 난타나 사물놀이처럼 비언어적인 (non-verbal) 예술과 놀이만이 쉽게 접근 가능하여 ‘한류’가 되었던 것이다.

 

세계화 정보화되면서 세상 어느 문화가 서로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이 있겠는가. 그러나 좀더 쉽게 접근 가능하고, 보다 많은 자양분을 가진 영역이 어딘가의 차이일 뿐이다. 그런 점에서 몇 가지 개념만 유의하자.

 

비언어예술(non-veral arts). 열린 연극(무대를 벗어나려는 연극양식), 가난한 연극(무대장치를 최소화하려는 연극), 거리 연극(서양의 마당인 길거리에서 이루어지는 연극양식), 야외극 (야외무대를 이용하는 연극), 교육연극(창의성 있는 교육 방법으로 연극 활용), 실험극(기존의 방법과는 다른 시도로 관중과의 새로운 만남을 시도하는 연극), 민중극(민중이 중심이 되거나, 민중문제를 내용으로 다루는 연극), 전통계승 연극(자신들의 문화적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현대화를 모색하는 연극), 연극학교(공연보다 대중들에게 연극을 보급하는데 중심이 가있는 프로그램) 등 다양한 이름의 시도들이 도처에 널려있다.

눈만 뜨면 보이는 문화적 자양분이다.

 

재미있는 관점 한 가지. 민요굿판을 꾸렸던 김상철(Kbs 국악관현악단)의 말이다. “서양음악은 계단식 음악이지만, 우리 음악은 출렁거리는 액체 같은 음악이다.” 다양한 현대극들이 어찌 보면 정형화를 추구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다시 마당극에서 강조해야 할 것은 김상철의 말처럼 ‘흐름’이다. 다시 마당극의 주요미학이 ‘소통, 공감’이라면 이 출렁거림은 감성은 매우 유익하다.

 

출렁거림이 살아있는 현장은 바로 ‘축제’다. 축제의 공간은 ‘마을’이다. 유명한 스페인의 토마토축제는 1만명 인구를 가진 브뇰이란 작은 마을에서 이루어진다. 정기적으로. 그 매듭(세시풍속) 같은 작은 공간 속에서 전 세계가 출렁거리는 셈이다. 세계의 축제만큼 ‘다시 마당극’에 많은 암시를 주는 것이 있을까. 이런 축제에서 배워야 하는 가장 중요한 한 가지는 ‘정기적으로 이루어지는 모든 축제에는 유명한 그 무엇 하나가 있다’는 점이다.

마을에서 다시 마당문화를 시작하려면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하나를 가져야 한다. 그리고 그 하나를 변주하면서 압축된 시공간 속에서 출렁거려야 한다. 아, 바로 우리 음악의 정서다. 다시 마당극이 서야 할 지점이다.

공동취재단 하영권/김보경/정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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